‘세계테마기행’ 소문 유랑기 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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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거대한 산맥 아래 자리한 키르기스스탄에는 끝없는 초원과 만년설의 협곡, 바람만 지나가는 고갯길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떠돈다. 풍문은 늘 과장되고 때론 허황되지만,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은 어느새 사람들의 삶과 믿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이번 여정은 험준한 절벽 너머 숨겨진 푸른 낙원 자르달리에서 시작해 7,134m 레닌봉으로 가는 길목인 알라이 패스로 이어진다. 집 한 채 값과 맞먹는다는 엉뚱양 아라샨 양의 소문을 따라가고, 날아다니는 전설로 불리는 톈산의 유령까지 찾아 나선다.

5월 25일부터 5월 28일까지 방송되는 EBS1 ‘세계테마기행’ ‘소문 유랑기 키르기스스탄’ 편에서는 바람이 소문을 만들고 산이 전설을 품는 키르기스스탄 여정이 공개된다.

1부 소문의 낙원 자르달리 – 5월 25일 (월)

이식쿨 호수 남쪽에는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자연 명소 악사이 협곡이 있다. 황적색 사암 절벽과 퇴적 지형이 층층이 쌓인 풍경은 외계 행성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정은 이 낯선 협곡의 강렬한 풍경을 따라 시작된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 근처에는 험준한 바위산과 깊은 계곡 사이 숨겨진 푸른 낙원 자르달리 마을이 자리한다. 바트켄에서 사륜차를 타고 절벽 아래 낭떠러지가 펼쳐지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자르달리로 향하는 도로 12km 구간은 지금 공사 중이라, 험준한 바위를 폭파하는 장면까지 목격하게 된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자르달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와 통신이 제대로 닿지 않던 오지였다. 겨울이면 도로가 폐쇄돼 1년에 반은 외부와 단절됐고, 학교 전교생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고무줄놀이 하나만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쉬는 시간을 보낸다.

마을에서는 지나가다 인사를 했을 뿐인데 유제품 아이란과 카이막 등 음식을 한 상 대접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알티르벡, 자미라 씨 부부는 낯선 손님에게도 기꺼이 밥상을 내어준다. 감자를 심고, 소젖을 짜고, 아이란을 만드는 일상 속에서 자르달리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자르달리의 자르는 살구라는 뜻을 품고 있다. 계곡 안쪽으로 훨씬 들어간 끝에는 자르달리 마을의 500년 역사가 시작된 살구나무가 있다. 돌밭을 가꾸며 수백 년 된 살구나무를 지키는 이삭 할아버지를 만나고, 바위산의 햇빛과 바람에만 말렸다는 자르달리의 살구도 맛본다.

자르달리에서 수로 공사는 마을의 연중행사다. 마을 어르신들은 머리를 맞대고 수로를 고치며 물길을 다시 잡는다. 일이 끝난 뒤에는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것이 자르달리 마을의 문화다.

그 자리에는 처음 보는 전통 음식 올로보도 등장한다. 염소 허파에 우유를 담아 삶아낸 음식으로, 우유가 10리터는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첩첩산중 오지이지만 순박한 사람들의 온기로 지친 마음까지 회복되는 자르달리의 하루가 펼쳐진다.

2부. 경이로운 위로路 알라이 패스 – 5월 26일 (화)

남부 도시 오쉬는 3천 년 역사를 지닌 실크로드 교통의 요충지다. 이곳에 오면 꼭 맛봐야 하는 음식이 삼사다. 요즘 오쉬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한 식당에는 삼사 종류가 무려 세 가지나 준비돼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메뉴는 양갈비 한 대가 통째로 들어간 양갈비 삼사다. 바삭한 반죽 안에 큼직한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오쉬의 활기와 실크로드 도시의 넉넉함을 함께 보여준다. 과연 그 맛이 어떤지 직접 확인해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오쉬에서 파미르 하이웨이를 타고 7,134m 레닌봉을 품은 알라이 산맥으로 가는 1박 2일의 여정도 시작된다. 파미르 하이웨이의 관문 치이르치크 패스에서는 키르기스스탄 특유의 목가적인 풍경을 감상한다. 이후 소푸고르곤 마을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기로 한다.

마침 숙소 주인 할머니의 첫째 손주 딸 결혼식 준비로 마을은 떠들썩하다. 키르기스스탄의 결혼식은 총 3일에 걸쳐 진행된다. 하루는 친정, 둘째 날은 시댁에서 손님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셋째 날에는 예식장에서 식을 올린다.

친정 잔치에 초대한 손님만 무려 300명이다.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키르기스스탄 전통 빵 보르속을 시작으로, 말고기를 내장에 넣어 삶아낸 소시지 추축까지 하루 종일 음식 준비가 이어진다. 마을의 큰 행사는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이웃과 친지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가 된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손주 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이웃과 친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전통 모자 칼팍과 머리에 쓰는 조울룩을 선물로 준비해 온다. 선물을 전하며 덕담을 나누는 풍습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오래된 문화다.

씩씩해 보이던 신부의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낼 생각에 끝내 눈물을 흘린다. 웃음과 축하가 가득한 잔치 속에서도 이별의 감정은 조용히 밀려온다. 새신부의 행복한 새 출발을 빌어준 뒤 여정은 다시 알라이 산맥을 향해 이어진다.

해발 3,615m의 탈득 패스를 넘자 거대한 설산이 한층 가까워진다. 키르기스스탄의 최남단이자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 중 하나인 사리모골에 이르자 마침내 구름 사이로 레닌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압도적인 풍경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온다.

압디살람 씨는 이 마을의 유일한 레닌봉 셰르파다. 레닌봉 트레킹 코스는 1년에 단 두 달, 여름에만 열린다.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고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보기로 하며 고산 여정이 시작된다.

1차 목표는 레닌봉 베이스캠프 근처의 고산 호수다. 하지만 3,000m가 넘는 고도에 숨은 점점 가빠지고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급기야 고산병 증세로 제작진이 하산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럼에도 허락하는 한 끝까지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산행은 멈추지 않는다. 해발 3,500m 지점에 이르자 언덕 사이로 크고 작은 수십 개의 호수가 나타난다. 눈이 녹으면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툴파르콜 호수다.

툴파르콜 호수와 설산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마련된다. 만년설을 녹여 끓인 라면은 험난한 고산 여정 속에서 더 특별한 맛으로 다가온다.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갑작스럽게 우박이 쏟아지며 여정은 다시 긴장감을 더한다.

3부. 풍문으로 들었소 – 5월 27일 (수)

키르기스스탄의 드넓은 초원에서는 어디서나 양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만큼 비싼 양이 있다는 소문이 떠돈다. 그 풍문의 정체를 찾아 길을 나선다.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테미르카나트 마을의 한 농장이다. 그곳에서 털을 깔끔하게 민 아라샨 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큰 송아지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체구와 압도적인 엉덩이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고급 숫양의 경우 트랙터보다도 비싸고 1억 원을 호가한다고 전해진다. 아라샨 양은 타지키스탄의 히소르 양과 키르기스스탄의 거친 털 양을 교배해 탄생한 특별한 품종이다. 단순히 엉덩이가 크다고 비싼 값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농장 주인에게 아라샨 양의 몸값을 높이는 비결을 들어본다.

두 번째 풍문은 봄철 5월과 6월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숲속 저수지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는 알라아르차 저수지가 있다. 겨우내 얼어 있던 빙하가 녹은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농업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봄철 눈이 녹으면서 수위가 상승하면 포플러 나무로 뒤덮인 강변 일부가 물에 잠긴다. 이때에는 보트를 타고 물에 잠긴 숲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오직 봄에만 허락되는 특별한 자연의 감동이 알라아르차 저수지에서 펼쳐진다.

다음 풍문은 1시간 만에 짓는 집이다. 이식쿨 지역의 키즐투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유목문화의 상징인 전통 가옥 보즈 우이를 만들며 살아간다. 이곳에서 4대째 전통 기술로 보즈 우이를 만들어오고 있는 장인 알리벡 씨 부자를 만난다.

하얀 자작나무를 휘게 해 뼈대를 만들고, 양가죽과 야크 털 끈으로 집을 완성하는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특히 두꺼운 양털 천에는 무려 양 250마리 분량의 털이 들어간다. 보즈 우이를 세우는 과정을 함께하며 키르기스인들의 생활 지혜와 유목의 시간을 엿본다.

4부. 톈산의 유령을 찾아서 – 5월 28일 (목)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는 여정이 시작된다. 먼저 말고기 소시지가 들어간 키르기스스탄의 대표 고열량 음식 베쉬바르막을 맛본다. 거친 환경을 견디는 사람들의 식탁에는 삶의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키르기스스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톈산산맥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진다. 이 거대한 산 어딘가에 하얀 유령이 산다는 이야기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고, 나타나도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톈산의 유령을 찾아 떠난다.

7년째 설산을 오르내리며 유령을 추적하고 있는 바트로벡 씨가 여정에 함께한다. 이제는 그의 딸도 이 길에 동행한다. 유령의 정체는 다름 아닌 눈표범이다.

눈표범은 키르기스스탄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진다. 키르기스 민족의 영웅 마나스 장군을 전장에서 보호하고 승리를 도왔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신화와 현실이 겹치는 산에서 눈표범의 흔적을 따라간다.

해발 4,700m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바이보순 공동체 보호구역은 멸종 위기 종들의 서식지다. 특히 눈표범의 먹이인 산양이 많이 살아 눈표범이 자주 발견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트로벡 씨는 이곳을 순찰하며 눈표범의 서식지를 관리하고 밀렵꾼을 감시한다.

험준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던 중 야생 산양 아이벡스 무리를 만난다. 좁고 가파른 절벽 길 끝에서는 수상한 발자국과 배설물도 발견된다. 눈표범이 자주 찾아와 휴식을 취한다는 작은 동굴에는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눈표범은 예민하고 영리해 사람의 냄새를 맡으면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흔적을 찾는 일은 기다림과 조심스러운 관찰의 연속이다. 과연 전설 속 톈산의 유령 눈표범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증이 이어진다.

바트로벡 씨 집 뒷마당에는 특이한 공간이 있다. 아버지의 동상과 아버지를 기리는 작은 박물관이다. 그 주인공을 찾아 해발 3,300m 고산 목초지로 향한다.

설산 아래 펼쳐진 초원에는 흰 야크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 품종은 무려 20년 넘는 연구와 교배 끝에 복원해낸 것으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유유히 풀을 뜯으며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다.

바트로벡 씨의 아버지 바쉬탄딕 씨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정정하다. 그는 양을 포함해 평생 가축의 생산량을 늘린 업적을 인정받아 국민 영웅 훈장을 3번이나 받았다. 그 곁에서는 손주 아만딸 씨가 함께 흰 야크를 돌본다.

아만딸 씨를 잘 따르는 특별한 가족도 있다. 이름을 부르면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흰 야크 미샤다. 사람에게 경계심을 보이는 야크의 습성과 달리 미샤는 아만딸을 잘 따른다.

고산에서 3대가 척박한 자연을 견디며 이어가는 삶은 단순한 생업을 넘어 하나의 철학으로 남는다. 소문과 전설을 따라간 길 끝에서 만나는 것은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믿음, 노동,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소문은 허황된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들의 삶과 자연의 시간을 보여준다. 바람이 만든 소문은 어떤 풍경과 진실을 품고 있을까.

자르달리, 알라이 패스, 아라샨 양, 톈산의 눈표범을 따라가는 여정은 5월 25일부터 5월 28일까지 월~목 저녁 8시 40분에 방송되는 EBS1 ‘세계테마기행’ ‘소문 유랑기 키르기스스탄’ 편에서 공개된다.

출처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