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제53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작품상 4개 부문과 개인상 3개 부문의 수상작·수상자를 배출했다. 인디음악 30년을 기록한 음악 다큐멘터리부터 은퇴 세대의 경제 문제, 청소년의 고민, AI 시대 어린이 철학 토론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이 작품상 명단에 올랐다.
이번 수상에는 ‘스페이스 공감’의 ‘인디음악 30주년 특별기획 파이오니어 시리즈’, ‘다큐프라임 백세부자’, ‘청소년소통프로젝트 경청’의 ‘혜정x승제 크로스’, ‘어린 철학자’의 ‘AI시리즈 특집’이 포함됐다. 각각 문화예술교양, 생활정보TV, 생활정보R, 어린이 부문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수상작뿐 아니라 프로듀서·미술·작가 부문에서도 EBS 인력이 이름을 올렸다. 박유림 PD와 서상석, ‘세계테마기행’ 주꽃샘 작가가 개인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프로그램과 제작진 양쪽에서 수상 결과가 이어졌다.
인디음악 30년 기록한 ‘파이오니어 시리즈’

먼저 문화예술교양 부문 작품상을 받은 ‘스페이스 공감’의 ‘파이오니어 시리즈’는 한국 인디음악 30주년을 맞아 기획된 10부작 프로젝트다. 1995년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태동한 인디 신에서 출발해 장르와 세대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든 음악가들의 시간을 기록했다.
1995년은 한국 인디음악사에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꼽힌다. 소규모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기존 대중음악 산업과 다른 방식의 창작과 공연 문화가 만들어졌고, 그 흐름은 록을 넘어 힙합과 전자음악, 재즈, 지역 기반 밴드와 대안적인 K팝까지 넓어졌다.
시리즈에는 크라잉넛, 장영규, 더 콰이엇, 자우림, 피아니스트 윤석철, 키라라, 세이수미, DJ 소울스케이프, 바밍타이거 등이 참여했다. 각기 다른 시기와 장르에서 활동한 뮤지션들을 한 흐름에 놓고 개인의 음악 인생과 한국 대중음악의 변화를 함께 비췄다.
EBS는 2025년 11월 크라잉넛 편을 시작으로 매주 한 팀씩 개척자의 음악 세계를 조명했다. 크라잉넛이 홍대 인디 신의 출발점을 보여줬다면 장영규는 어어부 프로젝트와 씽씽, 이날치 등을 거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30년의 음악 여정을 드러냈다.
더 콰이엇과 자우림은 각각 한국 힙합과 밴드 음악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과정으로 시리즈의 폭을 넓혔다. 윤석철과 키라라는 재즈와 전자음악의 언어를 통해 대중음악 안에서 장르가 변형되고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이수미는 부산에서 출발해 세계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힌 밴드의 성장기를 담았고, DJ 소울스케이프는 턴테이블리즘과 프로듀싱을 중심으로 한국 음악에서 DJ 문화가 축적된 과정을 들려줬다. 바밍타이거는 여러 창작자가 느슨하게 결합한 얼터너티브 K팝 집단의 작업 방식으로 현재의 인디 신을 보여줬다.
각 편에서는 단순한 인터뷰에 머물지 않고 음악적 전환점이 된 대표곡을 라이브로 다시 들려줬다. 뮤지션이 스스로 자신의 선택과 실패, 변화의 순간을 돌아보고 실제 연주로 현재의 음악을 보여주는 방식이 기록과 공연을 한 화면 안에서 연결했다.
‘파이오니어 시리즈’는 방송만으로 시작된 기획도 아니었다. 본편에 앞서 노들 갤러리에서 약 20일 동안 전시를 열어 약 5천 명의 관람객을 만났고, 9월 7일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마련한 특별 공연에는 약 2천 명이 찾았다.
마지막 10부는 2026년 1월 23일 인디음악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마무리됐다. 산만한시선과 이날치, 김창완밴드가 무대에 올라 한국 대중음악의 과거와 현재, 다음 세대를 잇는 공연을 펼치면서 30년을 정리하는 시리즈의 끝을 완성했다.
‘스페이스 공감’은 이번 30주년 기획 이전에도 개관 20주년을 맞아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을 선정하고 그중 스무 팀을 집중 조명한 ‘명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했다. ‘파이오니어 시리즈’는 이런 기록 작업을 인디음악의 태동부터 현재까지 넓혔다.
은퇴 이후 돈의 시간을 그린 ‘백세부자’

두 번째 작품상은 2부작 ‘다큐프라임 백세부자’가 생활정보TV 부문에서 받았다. 프로그램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인 은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노후자금과 소비, 가족 부양, 주거와 자산 운용을 한 사람의 생애 전체에서 다시 살펴보는 경제 솔루션을 내세웠다.
‘백세부자’는 “노후자금은 얼마나 필요한가”, “왜 평생 일했는데도 노후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뒤에도 수십 년을 살아야 하는 현실을 ‘돈보다 더 오래 사는 삶’이라는 문제로 바라봤다.
프로그램에는 방송인 이금희와 머니 트레이너 김경필, 금융 설계 전문가 김경록 박사, 가족갈등·법률 전문가 양소영 변호사가 참여했다. 경제 문제를 금융상품 하나의 선택으로 좁히지 않고 소득과 소비, 가족 관계, 법률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기 위한 구성이다.
EBS가 제시한 문제의식에는 노후 준비의 필요성과 실제 준비 수준 사이의 차이도 포함됐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르고 노후 준비가 충분하다고 보는 사람은 5명 중 1명 수준이라는 현실에서 출발했다.
첫 번째 편은 오랫동안 일해도 은퇴 뒤 돈이 부족해지는 이유를 사례자의 실제 생활 안에서 분석했다. 생애소득과 지출을 한눈에 정리한 ‘머니 맵’과 일상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기록한 ‘머니 다이어리’를 활용해 어디서 재정 균형이 흔들렸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춘천의 임문규·신광순 부부는 19년째 곰탕집을 운영했지만 손님이 줄어들면서 밤에는 군고구마와 군밤을 팔고 5일장에서는 직접 만든 만두까지 팔아야 했다. 5억 원이 넘는 사업 빚을 안은 채 칠순을 앞둔 상황은 긴 노동이 안정된 노후 자산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줬다.
성남의 이종범·나현정 부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인 ‘마처 세대’의 사례로 등장했다. 93세 부친을 모시고 자녀 결혼과 창업까지 지원한 뒤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10년 동안 만든 계획을 흔들었다.
2부에서는 은퇴 뒤에도 경제적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과 자산 운용 방식을 바꾼 부부의 사례가 이어졌다. 김명철·장순녀 부부는 40년 동안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한 뒤 공무원연금을 받았지만 독립했던 아들 내외와 손녀가 다시 합가하면서 다섯 식구의 지출을 감당하게 됐다.
52평 아파트와 안정적인 연금이 있어도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는 상황이 몇 년째 이어졌다. 겉으로 보이는 자산 규모보다 은퇴 이후 매달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현금의 흐름이 중요하다는 점이 이들의 생활을 통해 드러났다.
이금수·주현선 부부는 36년간 수학교사로 근무한 뒤 트로트 듀엣 가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강남 아파트를 매각해 약 12억 원을 현금화하고 경기도 월세 아파트로 옮긴 선택을 두고 전문가들은 부동산과 현금 운용의 장단점을 실제 노후 생활비와 함께 살폈다.
전문가들은 결혼과 출산, 직업, 부모 부양, 자녀 지원, 부동산 매매처럼 생애 주기에서 내려온 선택들을 다시 펼쳐놓고 재정 위기의 원인을 찾았다. 같은 자산 규모라도 가족 구성과 고정비, 은퇴 뒤 현금흐름이 다르면 필요한 해법도 달라진다는 점을 사례별로 보여줬다.
단순히 “더 아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내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사례자가 이미 가진 자산과 소득, 가족관계에서 현실적으로 조정할 부분을 나누고 은퇴 이후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재정을 지속할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10대 이야기에 답한 ‘혜정x승제 크로스’

다음 수상작은 생활정보R 부문의 ‘청소년소통프로젝트 경청’ ‘혜정x승제 크로스’다. ‘경청’은 10대가 공부와 입시뿐 아니라 친구 관계, 가족, 진로와 일상의 감정을 직접 털어놓는 청소년 라디오로, 문제를 대신 해결하기보다 이야기를 먼저 듣는 방식을 중심에 둔다.
‘경청’은 평일 밤 청소년 청취자와 만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며 목요일 코너로 ‘혜정x승제 크로스’를 편성해 왔다. 수학 강사 정승제와 국어 강사 윤혜정이 학교생활과 공부 고민을 듣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답을 건네는 구성이다.
목요일 상담에서는 성적과 공부 방법 같은 익숙한 질문만 다루지 않는다. 부모와의 갈등이나 친구 관계, 진로 선택처럼 10대가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도 사연으로 받아 두 진행자가 현실적인 조언과 정서적인 공감을 나눠 제시한다.
실제 공개 방송에서도 국어와 수학 성적 고민뿐 아니라 운동선수를 꿈꾸는 자녀의 진로처럼 공부만으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사연이 다뤄졌다. 청소년의 말을 먼저 충분히 듣고 그 뒤에 두 진행자가 각자의 경험을 보태는 흐름을 유지했다.
두 진행자의 역할은 한 가지 정답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같은 고민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과 경험을 들려주면서 청소년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히고, 말하기 어려웠던 마음을 꺼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정승제와 윤혜정은 수험생에게 익숙한 강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송에서는 문제풀이보다 생활의 고민을 먼저 다뤘다. 공부와 성적이 청소년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실패와 불안, 관계의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해 왔다.
AI 시대 질문을 아이들에게 돌려준 ‘어린 철학자’

어린이 부문에서는 ‘어린 철학자’의 ‘AI시리즈 특집’ 3부작이 작품상을 받았다. 프로그램은 AI가 인간이 하던 일을 빠르게 대신하는 시대에 무엇을 더 잘 계산할 수 있는가보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책임질 것인가를 어린이의 질문으로 풀어냈다.
‘어린 철학자’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힘으로 ‘철학하는 힘’에 주목했다. 정답을 외우게 하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이유를 설명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토론을 통해 자신의 가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AI시리즈 특집’은 ‘생명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 ‘AI와 인간의 공존 가능성’,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이라는 세 가지 질문을 중심에 놓았다.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문제를 짧은 동화와 구체적인 상황으로 바꿔 어린이들이 직접 선택하고 이유를 말할 수 있게 구성했다.
토론에는 미리 정해진 대본이 없다. 아이들은 다른 참가자의 의견을 듣고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판단을 다시 설명하면서 기술의 편리함과 인간의 책임이 충돌하는 지점을 자신들의 언어로 풀어간다.
아이들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건 진정한 공감이다”, “기계는 계산하지만, 사람은 용기를 낸다”는 말도 꺼냈다. 어른이 내려준 결론을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서 답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프로그램의 방향을 보여준다.
자문위원회 운영을 통해 교육적 가치와 철학적 깊이를 더한 것도 한 축이다. 어린이의 자유로운 발언을 살리면서도 생명과 공존, 존엄이라는 질문이 단순한 찬반 토론으로 좁아지지 않도록 사고의 범위를 넓혔다.
박유림 PD·서상석·주꽃샘 개인상
개인상에서도 EBS 수상자가 이어졌다. 프로듀서 부문에는 ‘딩동댕 딩동댕, 수상한 방송국’의 박유림 PD가 선정됐고, 미술 부문에는 서상석, 작가 부문에는 ‘세계테마기행’ 주꽃샘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박유림 PD의 수상 프로그램은 어린이 콘텐츠 ‘딩동댕 딩동댕, 수상한 방송국’이다. 작품상 네 편과 별도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한 개인의 성과가 프로듀서 부문에서 인정되면서 EBS 어린이·교육 콘텐츠 영역에서도 개인상 수상자가 나왔다.
서상석은 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화면 앞에 등장하는 출연자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공간과 시각적 완성도를 만드는 제작 영역도 개인상 수상 명단에 포함됐다.
주꽃샘 작가는 ‘세계테마기행’으로 작가 부문 수상자가 됐다. 세계 각 지역의 문화와 사람, 자연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어가는 프로그램에서 이야기를 구성해온 작가가 개인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심사는 전국 지상파 방송사 내부 경쟁을 거쳐 출품된 프로그램 239편과 방송인 6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최종적으로 작품상 30편과 개인상 15명이 선정됐고, EBS는 이 가운데 작품상 4개 부문과 개인상 3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방송대상은 1973년 시작돼 지상파 방송의 공익적 가치와 방송문화 발전에 기여한 프로그램과 방송인을 선정해왔다. 제53회 시상식은 9월 3일 열릴 예정이다.
EBS가 받은 네 작품상은 음악, 노후경제, 청소년 소통, 어린이 철학처럼 다루는 대상과 매체가 서로 다르다. 여기에 프로듀서·미술·작가 개인상까지 더해지면서 프로그램의 소재뿐 아니라 이를 만드는 제작 영역도 수상 명단에 함께 올랐다.
수상 결과는 프로그램과 제작 인력을 함께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았다.
사진 : E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