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추적자 설록 6회 정조 ‘비밀편지 299통’, 정적 심환지와 짠 막후정치 드러났다

8월 18일 방송된 SBS Plus ‘시간추적자 설록’에서는 정조와 심환지가 주고받은 비밀 편지부터 미국 CIA의 ‘MK 울트라 프로젝트’까지, 공식 기록만으로는 온전히 보이지 않았던 권력의 이면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

시간추적자 설록 6회 정조 ‘비밀편지 299통’, 정적 심환지와 짠 막후정치 드러났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

이날 가장 먼저 소개된 것은 2009년 세상에 공개돼 역사학계의 관심을 모은 정조의 비밀 편지였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편지를 보낸 상대는 오랫동안 정치적 맞수로 알려졌던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 심환지였다.

공개된 어찰은 정조가 재위 말기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를 대규모로 모은 자료다. 1796년부터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00년까지 이어진 편지 299통이 확인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왕과 정적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정황이 드러났다.

정조는 편지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을 거듭 강조했다. 심환지가 편지를 확인한 뒤 없애기를 요구할 정도로 은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았고, 국정 현안과 인사 문제를 비롯한 정치적 판단도 편지 안에서 논의했다.

하지만 심환지는 정조의 당부와 달리 편지를 버리지 않았다. 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까지 적어 보관한 문서가 약 200년 뒤 공개되면서 당시 공식 기록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정조의 정치 운영 방식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 대립하고 뒤에서는 각본

겉으로 대립하고 뒤에서는 각본
겉으로 대립하고 뒤에서는 각본

정조실록에는 정조와 심환지가 정치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남아 있다. 비밀 편지에서는 공개적인 회의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정조가 사전에 심환지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심환지가 조정에서 그 역할을 수행한 사례가 확인된다.

대표적으로 정조는 특정 인물을 추증하는 문제를 두고 심환지에게 먼저 제안을 올리도록 지시한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취지로 말을 꺼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공식 기록만 보면 심환지가 먼저 의견을 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정조의 구상이 있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비밀 편지는 실록의 기록이 모두 틀렸다는 의미보다, 최종적으로 남은 공식 기록만으로는 정치적 결정이 만들어지는 실제 과정을 다 볼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조정에서 심환지가 먼저 제기한 것처럼 기록된 사안이 편지에서는 정조가 앞서 순서를 설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공개된 정치와 비공개 조율이 동시에 움직였던 모습이 확인됐다.

또 정조는 심환지를 단순히 반대파로 밀어내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는 정국을 움직이는 통로로 활용했다. 서로 다른 정치 세력이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물밑에서는 현안을 상의하고 대응 방식을 맞췄고, 편지는 정조가 여론과 신하들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살피며 정국을 운영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됐다.

이를 지켜본 장항준은 “그게 다 짠 거였어?”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장현성도 공개적으로는 정적처럼 움직이면서 뒤에서는 긴밀하게 의견을 맞춘 두 사람의 관계를 “총연출 정조, 주연배우 심환지”라고 표현했고, 정조를 향해 “천재 감독”이라고 감탄했다.

비밀 편지에는 정치가 정조뿐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적는가 하면, 반대 세력까지 자신의 정치 구상을 실행하는 과정에 활용하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익숙했던 성군 이미지와 다른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새롭게 드러난 모습에 장항준은 오히려 정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는 “정조가 더 좋아지는데요? 진짜 정치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며 공개적인 대립과 물밑 조율을 동시에 사용했던 정조의 정치 방식에 흥미를 보였다. 편지 한 묶음이 익숙했던 정조의 이미지를 바꾸면서, 공식 기록을 읽을 때 그 기록이 만들어진 과정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냉전이 만든 MK 울트라 프로젝트

냉전이 만든 MK 울트라 프로젝트

이야기는 조선의 비밀 편지에서 현대사의 비밀 프로젝트로 넘어갔다. 두 번째로 다룬 사건은 1953년 미국 CIA가 추진한 ‘MK 울트라 프로젝트’였다.

MK 울트라는 냉전기 행동과 정신에 영향을 미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 연구 사업이었다. CIA 문서에는 약물과 최면 등을 이용한 행동 통제 연구가 포함됐으며, 일부 실험에서는 자신이 실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약물이 사용된 사실이 남아 있다.

초기 하위 프로젝트 가운데는 LSD의 작용을 연구한 내용도 확인된다. 병원 환경에서 당사자가 실험 사실을 모르는 상태로 약물을 투여하는 방안까지 문서에 언급될 만큼 실험 방식은 심각한 윤리 문제를 안고 있었다.

CIA 내부 문서상 MK 울트라는 1953년 봄 공식 승인 단계에 들어갔고 같은 해 여러 하위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화학물질과 약물의 효과를 살피는 연구가 넓게 진행됐으며, 이후 의회에 공개된 자료에서는 최면을 포함한 행동 수정 기법도 연구 대상에 들어갔던 사실이 확인됐다.

실험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연구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일부는 약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실험에 노출됐다. 이 차이는 MK 울트라가 단순한 비밀 연구를 넘어 인간 대상 연구의 동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한 사례로 남게 된 핵심 이유가 됐다.

CIA가 운영한 관련 연구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대상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실험에 노출된 사람도 있었다. 이후 공개된 자료에서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비밀 장소에서 이뤄진 비인지 실험까지 거론되면서 국가기관이 비밀리에 어디까지 행동 통제 연구를 확대했는지가 드러났다.

신아영은 이 프로젝트의 내용을 접한 뒤 “악마도 울고 갈 잔인함”이라고 표현했다. 봉태규 역시 “끔찍함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연구라는 이름 아래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진행된 실험에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사라진 기록, 끝까지 남은 의문

사라진 기록, 끝까지 남은 의문

문제는 실험의 전체 규모와 피해자를 지금도 정확하게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관련 기록 상당수가 폐기됐고, 뒤늦게 발견된 MK 울트라 자료에도 비인지 실험에 동원된 사람들의 이름이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아 당사자를 모두 특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프로젝트의 실체는 1970년대 미국 정보기관의 불법 활동을 추적한 언론 보도와 정부·의회의 조사가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1977년에는 미국 상원에서 MK 울트라의 행동 수정 연구를 다룬 공개 청문회가 열렸고, CIA도 약물과 최면을 이용한 인간 대상 연구와 일부 비인지 실험이 있었음을 의회에 설명했다.

뒤늦은 조사가 어려웠던 이유도 기록에 있었다. 프로젝트 관련 파일 상당수가 이미 사라진 뒤였고, 남아 있던 문서만으로는 누가 언제 어떤 실험을 겪었는지 전체 목록을 복원하기 어려웠다. CIA 역시 의회에 비인지 실험 대상자의 이름을 자료에서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고, 관련 기관의 협조를 통해 대상자를 확인하려는 작업을 진행했다.

정조가 없애라고 당부했던 편지는 심환지가 남겨 두면서 200년 뒤 정치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료가 됐고, 폐기됐던 CIA의 비밀 연구 기록도 남은 자료가 다시 발견되면서 뒤늦게 조사 대상에 올랐다.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이야기는 권력이 감추려 했던 기록이 시간이 흐른 뒤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을 남겼다.

심환지가 보존한 편지는 정조와 심환지의 관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고, 살아남은 MK 울트라 문서는 비밀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실험의 윤리적 문제를 세상에 드러냈다. 방송에서 소개된 두 사건 가운데 기록 한 장이 역사에 대한 판단을 가장 크게 바꿨다고 느낀 순간은 어디였을까?

사진 : SBS Plus ‘시간추적자 설록’

프로모션 배너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