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면이 푸른 서해로 둘러싸인 충청남도 태안(泰安)은 이름 그대로 ‘크고 편안한 기운’을 품은 땅이다. 검은 기름 마루가 온 해변을 덮쳤던 절망의 순간도 있었으나, 전국에서 모여든 123만 봉사자들의 온기와 주민들의 눈물겨운 손길은 척박해진 바다를 1년 만에 기적처럼 되살려냈다.
6월 20일에 방송되는 KBS1 ‘동네 한 바퀴’ 375회 ‘우리의 바다 – 충청남도 태안군’ 편에서는 검은 상처를 딛고 푸른빛을 되찾은 태안의 바다, 그리고 그 위대한 바다를 닮아 삶의 풍파 속에서도 내일을 일군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희망의 탑을 쌓다 – 천수만 부상탑


태안과 서산, 홍성, 보령을 품고 이어지는 서해안의 너른 품, 천수만. 그 망망대해 물결 위로 눈길을 붙드는 탑 하나가 떠 있다. 조구널섬과 여우섬 사이,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부상탑이다. 수심이 10m 안팎으로 얕아 갯벌이 넓게 발달한 이곳은 하루에 단 두 번, 썰물 때가 되어야 탑으로 향하는 바닷길이 열린다.
부상탑이 세워진 건 2009년 늦봄. 서해안 기름유출사고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던 시기, 태안이 다시 편안한 바다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탑이다.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태안군민들의 힘으로 제빛을 되찾은 바다. 그 바다 위에 세워진 부상탑은 이제 태안의 아픔과 회복을 함께 기억하는 명승지가 되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바다, 태안에서의 첫걸음을 부상탑에서 시작해 본다.
과학자를 꿈꾸던 아들과 엄마가 끓이는 하얀게국지


게가 많이 잡히는 태안에서는 예부터 작은 게를 빻아 김치에 넣거나, 게장을 담근 뒤 남은 간장으로 김치를 담가 감칠맛을 더했다. 이 김치가 푹 익으면 물을 넉넉히 붓고 끓여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태안의 향토음식인 게국지다. 고춧가루가 귀하던 시절 만들어 먹던 음식인 만큼, 본래 게국지는 시원 칼칼한 뽀얀 국물이 특징인데.
태안군 원북면에서는 옛 조리법에 현대적인 해석을 더 해, 20여 년 넘게 하얀 게국지의 맛을 이어오고 있는 모자가 있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과학자의 꿈을 품었던 아들이 식당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재작년.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신 뒤부터라는데.
한때 어머니를 천년만년 살게 해드릴 약을 개발하겠다며 제약회사에 들어갔던 아들은, 이제 어머니를 은퇴시켜드리고 어머니의 자부심인 게국지의 맛을 한결같이 잇는 것이 꿈이 됐단다. 어머니의 손맛에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과 기록을 더 해 태안의 옛 맛을 이어가려는 아들의 새로운 도전을 만나본다.
사계절 꽃이 피는 엄마의 정원


태안군 남면, 인적 드문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는 정원이 있다. 이곳을 가꾸는 사람은 인천에서 30년 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정래 씨. 2009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6차례나 이어갔지만 암이 뼈로 전이되자, 10여 년 전 태안에 내려와 흙을 만지고 꽃을 심으며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홀로 정원을 돌보는 아픈 딸이 걱정되어 어머니도 태안에 내려왔으나, 어머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암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모녀는 서로를 돌보며 2년 반 동안 함께 흙과 씨름했고, 지금의 정원은 그 시간이 꽃으로 남은 공간이 되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정원을 지키고 있는 정래 씨. 엄마와 딸의 시간이 고스란히 피어나는 치유의 정원을 찾아가 본다.
태안의 신(新) 풍속도 – 강아지와 함께하는 갯벌 체험


반려 가구 552만 시대.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려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있다. 고운 갯벌과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어촌마을인 병술만 어촌체험휴양마을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다는데. 각양각색 귀여운 강아지들과 함께 해루질도 해보고, 바다가 주는 유쾌한 시간을 만끽해 본다.
버려진 조개껍데기에서 찾은 제2의 인생


태안군에서 가장 작은 동네지만, 크고 작은 무인도를 여럿 품은 고남면. 이곳에는 바다가 빚어낸 조개껍데기로 작품을 만드는 은수 씨가 있다. 오래전 이혼 후, 30여 년간 건축 현장에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두 딸을 키워낸 은수 씨. 하지만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은 뒤, 30년 가까이 이어온 건축업을 불과 한 달 만에 정리했다.
이후 딸의 시댁이 있는 태안으로 내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은수 씨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마주한 조개껍데기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발견했단다. 온갖 풍파를 겪어내야만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반질반질한 윤을 내는 조개처럼, 건축 현장을 누비며 치열하게 살아온 은수 씨도 이제야 비로소 자신만의 빛을 내는 것 같다는데. 바다에 버려진 것들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녀의 반짝이는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본다.
알콩달콩 섬돌이, 섬순이 부부의 우럭통양념구이


섬 속의 섬, 태안군의 작은 섬 마도에는 평생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온 어부 남편과 제주 해녀 출신 아내가 있다. 남편을 따라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오지 섬 마도에 정착한 아내.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한평생 해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40여 년 동안 한결같이 배를 탔다.
우직한 바다 사나이가 잡아 올리는 것은 ‘땅끌이’라는 기법으로 낚은 자연산 우럭. 오로지 손끝의 감각으로만 고기를 끌어 올려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지만, 그렇게 잡아 올린 자연산 우럭은 더 차지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단다. 남편이 잡은 자연산 우럭은 회나 매운탕이 아닌 우럭통양념구이로 먹는 것이 이곳의 별미.
손맛 좋은 아내가 열 가지가 넘는 채소를 푸짐하게 넣고, 매콤한 양념을 더 해 통째로 익혀내면 찜과 구이의 매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럭통양념구이가 완성된단다.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서도 서로의 곁을 지켜온 부부. 그 깊고 진한 정이 담긴 우럭통양념구이를 맛본다.
천년 세월을 잇는 부자(父子)의 자부심 – 태안 전통소금 자염


물에 금이 흐른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낭금마을. 예부터 귀한 소금은 ‘바다의 금’이라 불렸고 낭금갯벌에서는 오래전부터 갯벌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전통 방식, 자염이 성행했다. 자염은 바닷물이 7일에서 10일가량 들어오지 않는 조금 때, 마른 갯벌 흙을 채취해 염도를 높인 함수와 함께 6시간 넘게 끓여내야 완성되는 귀한 전통 소금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천일염이 들어오고, 1960년대 간척사업까지 이뤄지며 태안 자염의 명맥은 끊길 위기에 놓였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낭금갯벌의 제방이 유실되며 갯벌이 다시 살아났고, 2001년 복원사업을 통해 할아버지의 기술이 손자에게까지 전해지게 됐다. 부드러운 짠맛에 은은한 단맛이 감돈다는 태안의 자염. 사라질 뻔한 전통을 되살린 낭금마을에서, 대를 이어 바다의 금을 만드는 자염 부자의 달콤짭짜름한 인생을 만나본다.
검은 기름을 걷어낸 태안의 바다는 이제 부상탑과 하얀게국지, 엄마의 정원과 자염처럼 사람들의 삶으로 다시 빛나고 있다. 123만 손길이 되살린 바다 위에서 저마다의 내일을 일구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상처를 기적으로 씻어낸 장한 태안의 바다. 그 바다를 온몸으로 사랑하며, 삶의 모진 파도 속에서도 기어이 자신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6월 20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 KBS1 ‘동네 한 바퀴’ 375회 ‘사랑한다 우리의 바다 – 충청남도 태안군’ 편에서 공개된다.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