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9일에 방송되는 KBS1 ‘시사기획 창’ 548회 ‘5·18 46주년 기획 – 발신자를 찾습니다’ 편에서는 5·18 직후 미국 LA에 도착한 짧은 전보의 발신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공개됩니다.
45년 전 전보를 보낸 사람은 누구였나
지난해 11월, 일흔이 넘은 재미교포 변호사 김률이 광주 5·18 기념재단을 찾는다. 그는 45년 전 전보를 보낸 사람을 찾고 싶다는 요청을 전한다.
1980년 5·18 직후 미국 LA에서 받았다는 전보에는 “Long live Korea. Long live Democracy”라는 짧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누가, 왜 이 문장을 보냈는지 알기 위해 취재진은 김률 변호사를 대신해 발신자 추적에 나선다.
“광주에 의용군을 보내려 했다”…80년 5월 LA
당시 국내 언론은 사전 검열과 보도 통제로 광주 상황을 제대로 전하기 어려웠다. 반면 외신은 현장을 실시간으로 국외에 타전했고, 미국 교포들은 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돌린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재미 한인 대학생들은 광주를 돕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국민주학생총연합회 학생들을 중심으로 의용군을 꾸리려는 움직임이 생겼고,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이들까지 합쳐 17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비자 발급 등의 문제로 광주행은 좌절됐다. 이들은 함께 피를 흘리자는 의미로 집단 헌혈 시위에 나섰고, 수백 명이 헌혈에 동참했다.
1980년 5월 24일부터 사흘 동안 LA 적십자사 점거 농성도 이어졌다. 광주에 피를 보내달라는 요청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광주는 최종 진압됐으며 LA 농성도 격론 끝에 해산했다.
LA에 도착한 “Long live Democracy”
헌혈 농성 뒷정리를 위해 남아 있던 25살 대학생 김률은 LA 적십자사 혈액원장 노먼 키어로부터 한국에서 온 전보 한 통을 받는다. 전보에는 “Long live Korea. Long live Democracy”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김률은 그 시점을 농성 해산 2~3일 뒤로 기억한다. 짧은 전보는 광주와 LA를 잇는 마지막 신호처럼 남았고, 오랜 시간 그의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45년이 지난 2025년 11월, 변호사가 된 김률은 다시 광주를 찾았다. 12·3 계엄을 보며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오래 묻어둔 전보의 발신자를 찾고 싶다는 마음을 꺼냈다.
선교사 육성 증언 최초 공개
취재진은 전보의 흔적을 찾기 위해 5·18기념재단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0년 외교부 사료, UCLA 동아시아 도서관, LA 적십자사와 대한적십자사 자료를 살핀다.
또 1980년 광주를 취재했던 외신기자, 통역을 맡았던 미국 평화봉사단원, LA 헌혈 농성을 알고 있던 관계자, 외국인 선교사 그룹과 광주에 머물렀던 선교사 등을 접촉하며 발신자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5·18 당시 LA 교포들이 광주에 의용군을 보내려 했던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다. 또 5·18 최종 진압 직후 광주에 남아 있던 외국인 선교사가 참상을 기록한 육성 증언 녹음도 46년 만에 처음 발굴된다.
짧은 전보 한 통은 45년 전 광주와 LA를 잇는 미완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발신자를 찾는 과정은 그날의 민주주의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다시 보게 만든다.
5·18 직후 LA에 도착한 마지막 전보 발신자를 찾는 과정은 5월 19일 화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KBS1 ‘시사기획 창’ 548회 ‘5·18 46주년 기획 – 발신자를 찾습니다’ 편에서 공개됩니다.
출처 : KBS